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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정보 | [명사인터뷰] “법 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 셀프 스토리텔러가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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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작성일19-07-19 16:48 조회1,88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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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통판사’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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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라는 일을 수행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에요. 이런 자질이 충분히 배양돼야 사건을 깊게 볼 수 있죠. 여기서 ‘인간’은 추상적인 의미의 인간이 아니고 법정에서 만나는 사람들, 즉 개별적이고 살아있는 ‘사람들’이죠. 인간관을 바탕으로 개별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통과 경청’이 필수입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사건을 해결해야지 내가 가진 지식으로 판단하면 좋은 재판을 하기 어려워요.”

천종호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51)는 ‘판사’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어떤 법률 지식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얘기다.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 이같은 조언의 배경이 보인다.

단언컨대 천 판사는 요즘 청소년들 사이 가장 유명한 판사다. ‘천종호’라는 이름은 몰라도 ‘호통판사’, ‘안 바꿔줘 판사’라고 하면 청소년 열 중 아홉은 그의 얼굴을 떠올린다. 지난 8월‘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이 발생하자 인터넷 게시판 등에서는 천 판사가 사건을 맡아달라는 청원이 일기도 했다.

천 판사에게 ‘호통판사’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4년 전, 창원지법 부장판사 시절 법정에서 ‘한번만 용서해 달라’는 청소년에게 소년보호처분 중 가장 무거운 ‘10호 처분(2년간 소년원 송치)’을 내리며 엄하게 꾸짖는 모습이 방송을 타면서부터다.

법정에 선 ‘일진’과 사건을 무마하기 바쁜 부모, 교사들에게 호통을 치고, 소년원에 들어가는 10대 미혼모에게 배냇저고리를 선물하는 천 판사의 모습은 잔잔한 감동을 불렀다. 천 판사 본인의 인생도 바꿔 놓았다. 감정 소모가 심한 특성 때문에 판사들 사이에서도 기피 부서에 속하는 소년재판을 8년째 맡고 있다. 지난 8년간 그를 거쳐 간 아이들만 1만2000여명에 이른다.

“원래는 2년 정도만 하려고 했는데 이렇게 됐어요. 방송까지 나가고 나니 기왕 시작한 일 끝까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까지 하게 됐죠. 다음은 학대 아동 지원을 위한 대책을 고민 중이에요.”

천 판사가 만나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와 교사에게 ‘골칫거리’일 가능성이 크다. 훈육이 통하지 않는 아이를 앞에 두고 어떤 부모는 ‘포기’를 떠올리고 어떤 교사는 ‘외면’을 선택한다. 그런 아이들이 자신을 소년원에 보낸 천 판사가 만든 합창단에 들어와 노래를 하고, 축구팀에 들어와 경찰들과 경기를 한다. 대체 무엇이 다른 걸까?

“여기서는 아이들을 존중해줘요. 다른 아이들과 비교해서 ‘나쁘다’, ‘비정상이다’고 말하지 않아요. 잘못된 것은 따끔하게 혼내주지만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죠. 나쁜 습관을 고치는 것은 어려워요. 스스로를 돌아보세요. 어른도 어려운데 아이들도 똑같아요. 시간이 필요해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뀌진 못하더라도 스스로 충동을 조절하는 법을 배우는 거죠. 그것만으로도 아이들은 달라질 수 있어요.”

자신을 꾸짖는 천 판사에게서 청소년들은 ‘진짜 어른’의 모습을 보는 것이다. 사고를 치고 법정에 서서 천 판사에게 호되게 꾸지람을 들은 한 청소년은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질책을 당한 것 같아 속이 후련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천 판사는 아이들의 마음속에 자리한 ‘외로움’을 읽었다.

“청소년 폭력의 가장 큰 원인은 인간관계에 있어요. 이들이 관계에 목메는 이유는 의외로 단순한데 ‘외로움’때문이에요. 가정에서 방치된 아이들은 외로움을 심하게 타요. 학교에서도 소외되면 결국 대안학교나 학교 밖으로 밀려나는데 그럼 더 외로워지고 몇 안 되는 친구를 붙잡기 위해 어떻게든 관계를 지키려고 발버둥 치죠. 관계를 지키려 폭력을 행사하고, 또래와 어울리려고 돈과 물건을 훔치고, 성매매를 하기도 해요. 결국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가정과 공동체에요.”

천 판사가 일종의 대안가정인 청소년회복센터를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천 판사 주도로 만들어진 청소년회복센터는 전국 19곳에서 운영 중이다. 법원에서 보낸 10여명 남짓한 아이들은 부모 역할을 하는 센터 운영자와 서로 부대껴가며 타인과 관계 맺는 법,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등을 배워나간다. 센터의 가장 큰 역할은 청소년 범죄가 주로 발생하는 야간 시간에 아이들이 있을 곳과 할 일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청소년회복센터에 가기 전에 아이들이 피해를 변상하도록 하거나, 센터에 위탁된 후 아르바이트 등을 해서 갚아 나가도록 하고 있어요. 아이들 중에는 부모가 있었으면 집으로 갈 수 있는데 못 간다고 처지를 비관하는 아이도 있죠. 센터가 이들에게 가정이 돼주는 거예요. 가정과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것을 센터에서 배워 ‘재비행’을 막는 것이 가장 큰 목표에요.”

천 판사는 학부모와 교사들에게 아이들을 ‘투명인간’으로 만들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부모와 교사가 이들을 지켜보고 울타리가 되어 줄 때 아이들은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고 천 판사는 믿는다. 경험에서 나온 믿음이다. 청소년회복센터를 중심으로 합창단, 축구단, 캄보디아 미니 도서관 지어주기 등 활동을 하며 천 판사는 아이들이 변하는 모습을 봤다.

“아이들은 바뀔 수 있어요. 물론 시간이 걸리죠. 중요한 것은 아이들은 혼자서 바뀌지 않아요. 부모와 교사, 어른이 필요해요. 그 역할을 부모와 학교, 센터에서 해줘야죠.”

‘가해’ 학생들을 위한 지원 활동을 두고 ‘왜 학교폭력 가해자를 보호하느냐’는 비난도 나온다. 천 판사는 “가해자 보호가 아닌 재비행을 막고 사회 안에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한다는 관점에서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피해자 보호와 지원도 물론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은 피해자를 위한 지원도 거의 없죠. 재판이 끝나면 피해자에 대한 관심도 끊겨요. 이들을 위한 심리치료, 학교에 다시 돌아가기 위한 각종 정책적 지원이 절실해요. 하지만 피해자 지원책이 소외된 가해학생들을 더 소외시키는 것이 될 순 없어요. 그냥 두면 아이들은 또다시 범죄를 저지를 테니까요.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가해자를 위한 대책도 분명히 필요한 거죠.”

올해로 경력 21년차인 천 판사 역시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7남매와 부모님까지 아홉 식구가 단칸방에서 살았다. 초등학교 때는 육성회비를 내지 못해 학교에서 쫓겨난 적도 있었고, 대학 입시원서를 살 돈이 없어 대학 입학을 포기할 뻔하기도 했다. 친구의 도움으로 법대에 진학했고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선택한 직업이 판사였다.

“대학 원서 접수 마지막 날이었는데 길 가다 우연히 이름만 아는 사이인 친구를 만났어요. 원서를 썼냐고 물어봐서 안 썼다고 했더니 친구가 입시원서를 사주고 같이 가서 접수까지 해줬죠. 청소년 특강이라도 있으면 항상 이 사례를 이야기해요. ‘여러분의 배려가 누군가에게 삶의 전환점이 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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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판사는 마지막으로 청소년들에게 ‘셀프 스토리텔러’가 될 것을 강조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놔야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인생 전체를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하죠. 그래야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릴 수 있어요.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보세요.”

◆천종호 판사는… 1965년생. 부산대학교 졸업, 1994년 제36회 사법시험 합격(사법연수원 26기 수료), 부산지방법원 판사, 창원지방법원 소년부 부장판사, 부산가정법원 부장판사. 2013년 1월 학교 폭력을 조명해 화제를 모은 SBS TV 다큐 '학교의 눈물'에서 가해 학생과 그 부모에게 호통을 치며 부모의 훈육과 교육의 전반적 문제를 꼬집고 호통을 쳤다. 2013년 3월에는 KBS 2TV '이야기 쇼 두드림'에 천종호 판사의 이야기가 소개되기도 했다.저서로는 <아니야 우리가 미안하다>, <이 아이들에게도 아버지가 필요합니다> 등이 있다. 청소년 회복센터 카페에서는 천종호 판사의 글과 청소년 회복센터 활동내역 등의 글을 볼 수 있다. 

 

[글쓴이] 박보희 객원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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